100일 챌린지를 끝내고 나서 오히려 신발끈 묶는 게 싫어진 시기가 있었습니다. 매일 뛰던 사람이 갑자기 일주일 넘게 한 번도 안 나가는 걸 보고, 스스로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당황스러웠습니다. 뛰는 상상만 해도 피곤했던 그 시기 처음엔 그냥 며칠 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일주일이 되고, 나가야지 하면서도 몸이 안 움직였습니다. 예전엔 뛰고 나면 개운했는데, 그때는 뛰는 상상만 해도 피곤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런 러닝 슬럼프는 거의 모든 러너가 한 번쯤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더라고요. 특히 큰 대회를 마치고 나서 훈련 강도를 계속 유지하다가, 목표를 잃거나 마음이 지치면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감정적인 소진, 아무리 뛰어도 성취감이 안 느껴지는 상..
혼자 뛰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낙동강변에서 마주친 러너와 몇 번 페이스를 맞춰 뛰다 보니 예상 못 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혼자였다면 진작 포기했을 날에도 결국 신발을 신게 되더라고요. 낯선 러너와 나란히 뛰며 페이스가 달라졌습니다 처음엔 그냥 같은 시간대에 같은 코스를 뛰는 낯선 러너였습니다. 몇 번 마주치다가 인사를 나누고, 어느 날은 자연스럽게 나란히 뛰게 됐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혼자 뛸 때보다 페이스가 더 잘 나왔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나보다 조금 더 잘 뛰는 사람과 함께 뛰면 스스로를 팀의 약한 고리라고 느끼면서 평소보다 더 힘을 낸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실제로 어떤 연구에서는 이런 심리적 효과 덕분에 사람들이 혼자 할 때보다 파트너와 함께할 때 더 오래 노력을 유지했다는 ..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목표를 이뤘는데 오히려 허탈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상한 느낌이었습니다. 성취감 뒤에 찾아온 이상한 무기력 대회 직후 며칠은 성취감에 들떠 있었습니다. 완주 메달 사진을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주변에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자 그 기분이 사라지고 대신 묘하게 무기력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예전처럼 오늘 뭘 훈련할지 계획을 세울 이유가 없었고, 그동안 일상 전체를 채우고 있던 목표가 갑자기 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게 흔히 말하는 대회 후 우울감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몇 달간 훈련이 하루하루에 목적과 구조를 줘왔는데, 대회가 끝나면서 그 틀 자체가 통..
정강이가 몇 주째 욱신거려서 정형외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대뜸 제 뛰는 영상을 찍어보자고 하셨습니다. 영상을 다시 보고 나서야 제가 왜 다치는지 처음으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발이 몸보다 한참 앞서 있다는 걸 영상으로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영상 속 저는 매 걸음마다 발을 몸보다 훨씬 앞쪽에 쭉 뻗어서 딛고 있었습니다. 무릎도 다 펴진 채로 착지하고 있었고요. 처음엔 뭐가 문제인지 몰랐는데, 발이 무게중심보다 너무 앞에서 땅에 닿으면 그 자체가 브레이크처럼 작용해서 매 걸음이 비효율적이 되고 무릎과 엉덩이에 부담이 더 실린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소위 오버스트라이드라는 걸 저도 모르게 몇 년째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의사 선생님은 발이 어디로 떨어지는지보다, 착지할 때 무릎이 발목 위에..
첫 하프마라톤 출발선에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던 걸 아직도 기억합니다. 몇 달을 훈련해놓고도 정작 그 순간엔 다리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몸이 위협으로 착각한 순간, 초반부터 오버페이스했습니다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손이 떨리고 숨이 얕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훈련은 다 끝났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갔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런 반응이 몸의 투쟁 도피 반응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대회라는 상황 자체가 압박감, 고통에 대한 예상,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몸에 위협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설명을 보고, 제가 유별난 게 아니라 거의 모든 러너가 겪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심박수가 오르고 손바닥에 땀이 나고 호흡이 얕아지는 것도 다 같은 이유였습..
러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GPS워치 숫자에 너무 매달려서 오히려 러닝이 스트레스가 된 적이 있습니다. 매번 뛸 때마다 페이스 숫자만 보다가, 정작 그날 몸 상태는 제대로 못 챙겼던 시기였습니다. 숲길에서 흔들리는 페이스 숫자에 자책했습니다 가장 크게 흔들렸던 건 산길이나 나무가 우거진 구간을 뛸 때였습니다. 낙동강변 코스 중 다리 밑을 지나거나 나무가 빽빽한 구간에서는 페이스가 갑자기 킬로미터당 1분 넘게 느려졌다가, 트인 곳으로 나오면 다시 빨라지는 걸 반복해서 겪었습니다. 처음엔 제 체력이 그새 왔다 갔다 하는 줄 알고 자책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나무가 우거진 지형이나 골짜기처럼 위성 신호가 가려지는 구간에서는 GPS 오차가 커질 수 있다는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급격한 커브가 많거나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