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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기를 시작하고 1년이 넘었을 때 처음으로 러닝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워치 데이터만 보다가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달리기를 대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데이터는 숫자였지만 다이어리는 이야기였어요. 같은 달리기인데 기록하는 방식이 달라지니까 달리기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스마트워치 데이터만 보던 시기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스마트워치에 의존했습니다. 거리, 페이스, 심박수, 케이던스가 매일 쌓였어요. 그 데이터를 보면서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졌는지 확인하는 게 달리기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숫자로만 보는 달리기는 어떤 날은 만족스럽고 어떤 날은 실망스러웠습니다. 페이스가 나쁜 날은 그냥 나쁜 날이었어요. 그날 달리면서 뭘 느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기록에 남지 않았습니다.

     

    100일이 끝나고 나서 기록을 돌아봤을 때 숫자들은 남아있었는데 그날의 감각이 없었습니다. 37일째 어떤 날이었는지, 왜 그날 페이스가 갑자기 빨라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숫자는 있는데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러닝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한 계기

     

    100일 챌린지가 끝나고 두 달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달리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그날 강변에서 본 풍경이 인상 깊었어요. 갈대밭 사이로 왜가리 한 마리가 서있는 걸 달리면서 봤는데, 집에 와서 그 장면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스마트워치 기록에는 그날 8.2km, 페이스 6분 5초만 남아있었어요.

     

    그날 처음으로 노트에 달리기 일지를 썼습니다. 날씨, 코스, 몸 상태, 그날 본 것들, 달리면서 한 생각들을 짧게 적었어요. 형식 없이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썼습니다.

     

    이후로 달리기 일지가 루틴이 됐습니다. 매번 길게 쓰지 않아도 됐어요. 한 줄짜리 날도 있었고 반 페이지를 쓴 날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날 달리기에 대한 뭔가를 남겨두는 거였어요.

     

    러닝 다이어리가 달리기를 바꾼 방식

     

    달리기 일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것들이 있었습니다.

     

    달리는 중 주변을 더 보게 됐습니다. 나중에 기록할 게 생기니까 달리면서 의도적으로 눈을 더 뜨게 됐어요. 어떤 새가 있었는지, 강물이 어떤 색이었는지, 어떤 꽃이 피어있었는지를 보게 됐습니다. 숫자에 집착할 때는 발끝만 봤는데 일지를 쓰면서 고개를 들게 됐어요.

     

    통증이나 몸 상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게 됐습니다. 무릎이 약간 시큰거렸다, 오른쪽 엉덩이가 당겼다 같은 것들을 기록하다 보니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특정 거리를 넘어서면 발뒤꿈치가 당기는 게 아킬레스건 문제의 초기 신호라는 걸 일지를 통해 먼저 알아챘습니다.

     

    슬럼프를 예측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일지를 3개월쯤 쓰고 나서 보니까 어떤 달리기가 싫어지는지 패턴이 보였어요. 주간 거리가 50km를 넘기면 2주 안에 의욕이 떨어지는 패턴이 있었습니다. 그 패턴을 알고 나서 예방적으로 훈련량을 줄이니까 슬럼프가 덜 왔어요.

     

    훈련이 더 의미 있게 느껴졌습니다. 숫자만 보던 시기엔 나쁜 날이 그냥 나쁜 날이었는데, 일지를 쓰면서 그날 왜 힘들었는지 이유를 찾게 됐어요. 수면이 부족했다, 스트레스가 많았다, 먹은 게 부족했다 같은 것들이 기록에 남으면서 다음 달리기에 반영이 됐습니다.

     

    러닝 다이어리를 쓰는 방식

     

    특별한 형식이 없어도 됩니다. 저는 달리기 직후 5분 안에 짧게 쓰는 걸 원칙으로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그날의 감각이 희미해지거든요.

     

    기록하는 항목은 이렇습니다. 날짜와 날씨, 코스와 거리, 몸 상태 한 줄, 그날 달리면서 본 것 또는 생각한 것, 내일 달리기에 반영할 것. 이 다섯 가지가 기본입니다. 특별한 날은 더 길게 쓰기도 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한 줄만 쓰기도 합니다.

     

    디지털보다 종이 노트가 더 잘 맞았습니다. 스마트폰에 기록하면 다른 앱을 열게 되고 집중이 흐트러졌어요. 작은 노트에 손으로 쓰는 게 그날 달리기를 다시 한번 정리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1년치 다이어리를 다시 읽어봤을

     

    1년치 일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본 날이 있었습니다. 폐업 직후의 기록부터 마라톤 완주까지의 기록이 거기 있었어요. 숫자로 보면 거리와 페이스의 변화만 보이는데, 일지로 보니까 그 시간 동안 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보였습니다.

     

    처음 달리기 시작하던 날의 일지에는 "1km 달리고 돌아옴. 숨이 너무 찼다. 내일 또 나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썼어요. 마라톤 완주 다음 날 일지에는 "4시간 47분. 끝까지 달렸다"고만 썼습니다.

     

    그 두 문장 사이에 있는 것들이 달리기 일지였습니다. 숫자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거기 있었어요.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