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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많이 나는 날이 있었습니다. 폐업 관련 서류 처리 중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는데, 담당자와 통화하다가 전화를 끊고 나서 손이 떨렸어요. 그냥 집에 있으면 그 화가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아서 운동화를 신고 나갔습니다. 특별한 계획 없이 그냥 나간 날이었는데, 달리고 돌아왔을 때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날 낙동강 변에서 달리면서 생긴 일

     

    처음 1km는 화가 난 채로 달렸습니다. 평소보다 빠르게 달렸어요. 숨이 금방 차올랐는데 그게 이상하게 좋았습니다. 머릿속에서 계속 돌던 통화 내용, 억울한 감정,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들이 숨이 차오르면서 잠시 밀려났습니다.

     

    3km쯤 됐을 때 페이스가 자연스럽게 떨어졌습니다. 숨을 고르면서 달리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어요. 강물이 보이고,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화가 났던 상황이 여전히 머릿속에 있었지만 그 무게가 달랐습니다. 아까보다 가벼웠어요.

     

    5km를 달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 일이 해결된 건 아니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이 정리돼 있었어요. 달리기 전에는 감정에 압도된 상태였는데, 달리기 후에는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달리기가 분노를 처리하는 방식

     

    왜 달리기 후 감정이 달라지는지 찾아봤습니다.

     

    격렬한 운동을 하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됩니다. 엔도르핀은 자연적인 진통제이자 기분 개선 물질인데, 달리기처럼 지속적인 유산소 운동에서 특히 많이 분비됩니다. 이게 소위 러너스 하이라고 불리는 현상의 원인 중 하나입니다. 러너스 하이란 달리기 중 또는 후에 느끼는 행복감이나 도취감을 말하는데, 저도 처음엔 그게 그냥 기분 탓인 줄 알았는데 생리적으로 설명이 됐습니다.

     

    분노나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높아집니다. 코르티솔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불안감이 유지되고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이 이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화가 났을 때 달리면 분노가 처리되는 게 아니라 그 분노를 유발한 코르티솔이 낮아지는 거였습니다.

     

    운동 중 전전두엽 피질의 활동이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현상도 있습니다. 전전두엽이란 걱정, 계획, 분석 같은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뇌 부위인데, 달리기처럼 몸에 집중하는 활동을 할 때 이 부위가 잠시 쉬면서 과잉 사고가 줄어드는 효과가 생깁니다.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의 실제 메커니즘이었습니다.

    화가 날 때 달리기의 패턴이 생겼습니다

     

    그날 이후로 감정이 격한 날 달리기가 하나의 패턴이 됐습니다.

     

    처음 1~2km는 감정대로 달립니다. 억지로 페이스를 조절하려 하지 않고 그냥 몸이 원하는 속도로 달립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자연스럽게 빠르게 달리게 되는데, 그게 오히려 초반 감정을 빠르게 소진시키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3km부터는 의식적으로 호흡을 깊게 합니다. 빠른 달리기로 올라간 심박수를 조금씩 낮추면서 달리는 방식으로 전환해요. 이 구간에서 감정이 가라앉고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5km를 넘기면 문제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달리기 전과 같은 상황인데 보이는 게 달라지는 경험을 반복했어요. 감정이 걷힌 상태에서 보면 해결책이 더 명확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달리기 후 바로 상황에 대응하는 건 피했습니다. 달리고 돌아와서 샤워하고 물 한 잔 마신 뒤에 행동하는 게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어요.

     

    달리기가 감정 조절 도구가 됐습니다

     

    폐업 후 감정 기복이 심했던 시기에 달리기가 가장 현실적인 감정 조절 도구였습니다. 화날 때, 불안할 때, 막막할 때 밖으로 나가서 달리면 그 상태 그대로 있는 것보다 나아지는 걸 반복해서 경험했습니다.

     

    화가 날 때 참거나 억누르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더 건강한 해소 방식이라는 게 연구로도 확인된 내용입니다(출처: Journal of Sport and Exercise Psychology). 분노를 억압하면 오히려 코르티솔이 더 오래 유지되고, 신체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달리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날 생겼던 서류 문제는 결국 따로 해결해야 했어요. 근데 달리기 후에 그 문제를 대하는 내 상태가 달랐습니다. 그 차이가 꽤 컸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입니다. 감정 조절에 어려움이 지속된다면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runnersworld.com/health-injuries/a20851946/running-mental-health-a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