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달리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눈 속에서 달린 날이 있습니다. 상주에 눈이 꽤 많이 내린 날이었는데 낙동강 변 산책로가 하얗게 덮여있었어요. 평소 같았으면 집에 있었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게 달리기를 하면서 날씨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거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눈 속에서 달린 첫날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밤새 눈이 쌓여있었습니다. 기온이 영하 3도였어요. 평소 겨울 달리기를 하면서 방한 장비는 어느 정도 갖춰놓은 상태였는데, 눈 위에서 달리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낙동강 변으로 나가보니 발자국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이라 저 말고는 아무도 없었어요. 눈을 밟는 소리가 조용한 강변에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뽀드득 소리가 달리는 내내 났어요.
처음 1km는 조심스러웠습니다. 눈이 쌓인 노면이 미끄러울 것 같아서 평소보다 보폭을 줄이고 천천히 달렸어요. 발이 지면을 더 평평하게 딛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자세가 바뀌었습니다. 2km가 지나면서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눈 속에서 달리는 게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5km를 달리고 돌아오는 길에 뒤를 돌아봤어요. 하얀 눈밭에 제 발자국만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장면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풍경이었어요.
눈 속 달리기가 몸에 미치는 영향
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눈 속 달리기가 평지 달리기와 다른 점이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에너지 소비가 더 많습니다. 눈 위에서 달리면 발이 지면에 착지할 때마다 눈이 압축되면서 에너지 손실이 생깁니다. 연구에 따르면 눈 쌓인 지면에서 달리는 것이 같은 페이스의 평지 달리기보다 에너지 소비가 최대 40% 높다고 합니다(출처: Medicine & Science in Sports & Exercise). 같은 거리를 달려도 더 많은 칼로리가 소모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5km를 달렸는데 평소 8km를 달린 것처럼 지쳤던 거였습니다.
소근육이 더 많이 활성화됩니다. 고르지 않은 눈 위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달리기 때문에 발목 안정근과 코어 근육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사용됩니다. 트레일 러닝과 비슷한 효과인데, 47번 글에서 다뤘던 것처럼 균형을 잡는 훈련이 됩니다.
관절 충격은 오히려 줄어드는 면이 있습니다. 눈이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해서 아스팔트보다 관절에 가는 충격이 적습니다. 무릎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에게 가끔 눈 달리기가 도움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눈 속 달리기에서 주의한 것들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눈 속 달리기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생겼어요.
낙상이 가장 큰 위험입니다. 눈 아래 얼음이 숨어있을 수 있어요. 겉으로 보기엔 눈이 쌓인 것처럼 보여도 그 아래에 빙판이 있으면 순간적으로 미끄러집니다. 낙동강 변 그늘진 구간에서 그런 상황이 있었어요. 그늘진 곳은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얼기를 반복해서 특히 위험합니다.
페이스를 낮추는 게 필수입니다. 눈 위에서 평소 페이스로 달리려고 하면 자세가 불안정해집니다. 평소보다 20~30% 느리게 달리고 보폭을 줄이는 게 맞았어요. 기록을 신경 쓰는 날이 아니라 그냥 나가서 달리는 날로 마음을 바꾸는 게 먼저였습니다.
방한 장비를 더 철저히 챙겼습니다. 눈이 신발 안으로 들어오는 게 문제였어요. 일반 러닝화로는 눈이 들어와서 발이 젖었습니다. 발목을 덮는 게이터를 추가하거나 방수 기능이 있는 러닝화를 신는 게 도움이 됐습니다.
눈 속 달리기가 특별한 이유
날씨 때문에 달리기를 포기하는 날이 줄어들면서 달리기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비가 오면 어떻게 달리는지, 눈이 오면 어떻게 달리는지, 추우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알게 되면서 달릴 수 있는 날이 늘어났어요.
폐업 후 모든 게 뜻대로 안 되는 시기에 달리기만큼은 날씨와 상관없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눈이 와도 나가는 사람이 된다는 게 단순히 운동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기간을 버티는 방식이기도 했어요.
처음 눈 속을 달리고 뒤를 돌아봤을 때 본 그 발자국처럼, 달리기는 흔적을 남기는 일입니다. 숫자로 남는 흔적도 있고, 기억으로 남는 흔적도 있습니다. 눈 위의 발자국은 금방 사라졌지만 그날의 기억은 남아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눈길 달리기 시 안전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달리기와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눈 오는 날 낙동강변 달리기, 평소와 완전히 달랐던 것들 (0) | 2026.07.27 |
|---|---|
| 달리기 일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것들 (0) | 2026.07.26 |
| 비 온 뒤 달리기, 공기가 다른 그 날의 낙동강 변 (0) | 2026.07.18 |
| 달리기와 분노 조절, 화가 나는 날 달리면 생기는 일 (0) | 2026.07.17 |
| 50대 달리기 시작이 늦지 않은 이유, 직접 겪고 알았습니다 (0) | 2026.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