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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기를 시작하고 6개월쯤 됐을 때 처음으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러닝 모임에서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분이 5km를 목표로 하는데 같이 달려줄 수 있냐는 거였어요. 그분의 페이스에 맞춰 달리는 게 저한테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가볍게 수락했는데 그날 알게 된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내 페이스보다 느리게 달리는 게 이렇게 어려웠습니다

     

    그분 페이스가 km당 8분이었습니다. 제 평소 페이스보다 2분 가까이 느렸어요. 처음엔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느리게 달리는 게 생각보다 어색하고 힘들었어요.

     

    보폭을 억지로 줄이고 케이던스도 낮추다 보니 자세가 어색해졌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느린 속도에서 균형을 잡으려니 허리가 더 긴장되는 느낌이었어요. 케이던스를 낮추면 보폭이 넓어지면서 착지 충격이 오히려 커지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느리게 달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달려야 하는 것도 달랐습니다. 혼자 달릴 때는 호흡에만 집중하면 되는데, 옆에서 말을 건네면서 달리니까 호흡 패턴이 흐트러졌어요. 처음 2km는 대화를 하다가 제 호흡이 더 힘들어지는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말을 하는 행위 자체가 호흡 리듬을 방해하더군요.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상대방 상태를 파악하는 것도 신경 써야 했습니다. 그분 표정을 보면서 너무 힘들어하는지, 아직 여유가 있는지를 계속 확인해야 했어요. 그게 저한테는 완전히 새로운 집중 방식이었습니다.

     

    그분이 3km 지점에서 멈추고 싶다고 했을 때

     

    3km 지점에서 그분이 멈추고 싶다고 했습니다. 숨이 너무 찬다는 거였어요. 저도 처음 5km를 달리던 날이 생각났습니다. 4번 글에서 썼던 그 날이었어요. 그때 제가 3km 지점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했습니다. 낙동강 변 특정 벤치를 기준점으로 삼고 거기까지만 달리자고 스스로와 협상했던 기억이요.

     

    멈추지 말고 걸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달리기와 걷기를 섞어서 가도 5km를 완주하면 된다는 거였어요. 완주가 목표이지 달리기만 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걷다가 다시 달리기를 두 번 반복했습니다.

     

    마지막 500m에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끝까지 달렸습니다. 마지막 100m는 제가 옆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끝내자"고 했는데 그 말에 반응해서 다시 페이스가 올라갔어요. 결승점에서 그분 표정이 4번 글에서 제가 샤워하면서 눈물이 났던 날과 비슷했습니다. 완주한 사람만 아는 그 표정이었어요. 그 순간이 페이스메이커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페이스메이커를 하면서 달리기가 달라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가끔 페이스메이커를 하게 됐는데, 이 경험이 제 달리기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느린 페이스로 달리는 연습이 됐습니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초반 페이스를 억제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페이스메이커를 하면서 의도적으로 느리게 달리는 훈련이 됐습니다. 41번 글에서 다뤘던 첫 하프마라톤 오버페이스 실수를 두 번째 대회에서 안 한 이유 중 하나가 이 경험 덕분이었습니다. 느린 페이스에서도 자세를 유지하는 능력이 생겼어요.

     

    달리기를 가르치면서 제 자신의 달리기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초보자에게 페이스 조절, 호흡, 자세를 설명하다 보니까 제가 무의식적으로 하던 것들을 언어로 정리하게 됐어요. 아는 것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설명하면서 제 자신의 달리기 이해도가 더 높아졌어요.

     

    사람마다 달리기 적응 속도가 다르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같은 날 시작해도 3개월 만에 10km를 달리는 분이 있고, 6개월이 지나도 5km가 힘든 분이 있어요. 그 차이가 의지나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적응 속도 차이라는 걸 여러 명과 달리면서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와 비교하는 게 의미 없다는 걸 페이스메이커를 하면서 더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페이스메이커 역할이 달리기 커뮤니티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달리기를 어느 정도 하게 되면 주변에서 같이 달려달라는 부탁을 받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 역할을 거부하지 말고 한 번씩 해보시길 권합니다.

     

    다른 사람의 달리기를 도우면서 내 달리기가 더 풍부해집니다. 혼자 기록을 올리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만족감이 있어요. 그분이 5km를 완주하던 날 저도 무언가를 완주한 느낌이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돕는 행위가 돕는 사람의 자기효능감과 동기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출처: Journal of Sport and Exercise Psychology). 페이스메이커를 하고 나서 제 달리기 동기가 올라간 것도 이 맥락에서 설명이 됩니다.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같이 달려주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 역할을 다음 사람에게 이어주는 게 달리기 커뮤니티가 유지되는 방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처음 달리기 시작할 때 모임에서 천천히 같이 달려준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없었으면 제가 달리기를 오래 이어올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입니다.

     

    참고: https://www.runnersworld.com/training/a20851999/pacemaker-running-ti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