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러닝이 이렇게 대중화될 줄 몰랐습니다. 당시 헬스장이 문을 닫으면서 어쩔 수 없이 시작했던 달리기가, 이제는 천만 명이 즐기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았습니다. 2024년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달리기 참여율이 0.5%에서 6.8%로 급증했는데, 이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출처: 국민체육진흥공단). 제가 직접 경험한 러닝의 매력과 함께, 이 열풍 뒤에 숨겨진 산업적 변화를 데이터 중심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러닝화 시장의 고급화, 과연 필요한 투자일까
저는 처음 러닝을 시작할 때만 해도 집에 있던 운동화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하나둘씩 카본플레이트를 탑재한 고가 러닝화를 신기 시작하더군요. 여기서 카본플레이트란 신발 중창에 삽입되는 탄소섬유 판으로, 발의 추진력을 극대화하여 러닝 효율을 높여주는 기술입니다. 전문 마라톤 선수들이 주로 사용하던 이 기술이 이제는 일반 러너들에게까지 확산된 것이죠.
실제로 국내 러닝화 시장은 2025년 기준 1조 원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불과 4년 전인 2021년 운동화 시장 전체가 2조 7700억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러닝화만으로 전체 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게 된 셈입니다. 이러한 성장의 핵심에는 고가 제품군의 약진이 있습니다. 온러닝의 클라우드 붐 스트라이크 라이트 스프레이는 발매가만 40만 원이고, 리셀 시장에서는 60만 원대에 거래됩니다. 로에베와 온러닝의 협업 모델은 180만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저도 처음엔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냥 한강 둘레길을 가볍게 뛰는데 왜 수십만 원짜리 신발이 필요한지 말이죠. 하지만 직접 카본화를 신고 뛰어보니 차이를 체감했습니다. 같은 거리를 뛰어도 발의 피로도가 확연히 줄었고, 기록도 자연스럽게 단축됐습니다. 질소를 주입해 만든 질소 충전화는 쿠셔닝이 뛰어나 충격 흡수력이 일반 러닝화보다 30% 이상 높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여기서 질소 충전화란 신발 밑창 소재에 질소 가스를 주입해 가볍고 탄력적인 쿠셔닝을 구현한 제품을 의미합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자료를 보면 2024년 러닝 관련 소비 증가율이 30대 232%, 40대 225%로 20대보다 높았습니다(출처: 신한카드). 경제력을 갖춘 중장년층이 고가 러닝화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른바 '러닝화 계급도'가 공유되는데, 용도별로 데일리용·슈퍼 트레이너용·레이싱용으로 분류하고 각각 추천 모델을 나열합니다. 높은 등급일수록 비싼 모델이 배치되어 있죠.
제 경험상 이런 계급도가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장거리 마라톤을 준비한다면 레이싱화가 실제로 기록 단축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주 2~3회 5킬로미터 정도 뛰는 데일리 러너에게는 과한 투자일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중급 모델로 시작해서 실력이 늘어난 후 고가 모델을 구입했는데, 이 순서가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러닝화뿐 아니라 러닝 웨어 시장도 급성장 중입니다. 최근 패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러닝코어'는 러닝복을 일상복으로 입는 스타일을 지칭합니다. 온러닝, 호카오네오네, 새티스파이 같은 러닝 브랜드가 패션 아이템으로 주목받으면서 의류 가격도 상승했습니다. 크림 플랫폼 자료에 따르면 새티스파이의 2024년 하반기 거래량은 전년 대비 5160% 폭증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상반기 러닝 관련 매출이 전년 대비 23% 증가하자 '굿러너컴퍼니'라는 러닝 편집숍을 더현대 3개 점에 입점시켰고, 롯데백화점의 '나이키 라이즈' 매장은 개장 한 달 만에 수도권 나이키 매장 중 러닝 매출 1위를 기록했습니다.
러닝 크루 문화, 함께 달리는 즐거움과 그 이면
저는 혼자 뛰다가 러닝 크루에 합류한 케이스입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서 동기부여가 크게 됐습니다. 주 3회 저녁 8시에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만나 5~10킬로미터를 뛰는데, 완주 후 느끼는 성취감은 혼자 뛸 때와 차원이 다릅니다. 땀을 흘린 후 편의점에서 단백질 음료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들, 서로의 기록을 격려하고 달리기 팁을 공유하는 과정이 일상의 활력소가 됐습니다.
러닝 크루의 인기는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네이버 밴드에서 '러닝과 걷기' 주제 모임은 최근 2년 새 46% 증가했고, 당근 내 러닝 모임은 2025년 8월 기준 2024년 1월 대비 4배 이상 늘었습니다. 전체 러닝 모임의 40%가 연령 제한 없이 운영될 정도로 세대를 초월한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가 속한 크루도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섞여 있습니다.
하지만 러닝 크루 문화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것만 해도, 일부 크루는 한강 자전거 도로를 수십 명이 2~3열로 달리며 다른 이용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산책하는 시민들이 비켜달라는 외침에 놀라 옆으로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러너로서 민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공유 공간에 대한 에티켓 부족입니다. 러닝 크루는 커뮤니티 활동의 일종이지만, 공공장소에서는 보행자 우선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실제로 민원이 급증하자 일부 지자체는 규제에 나섰습니다. 서울 서초구청은 2024년 10월부터 반포종합운동장 러닝 트랙에서 5인 이상 단체 달리기를 제한했고, 송파구는 석촌호수 산책로에 '3인 이상 러닝 자제'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성북구도 '우측 보행·한 줄 달리기'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저희 크루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자체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주요 크루 에티켓은 다음과 같습니다:
- 2열 이하로 달리기, 좁은 구간에서는 1열 유지
- 보행자가 있으면 속도를 줄이고 양보
- 야간 러닝 시 반사 조끼나 LED 조명 착용
- 출발 전 스트레칭 공간 확보 시 다른 이용자 배려
제가 속한 크루는 이 규칙을 철저히 지키려 노력하고, 신규 멤버에게도 처음부터 강조합니다. 하지만 모든 크루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런라니'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자전거 무법자를 뜻하는 '자라니'에 빗댄 표현으로, 무질서하게 뛰는 러너를 비판하는 용어입니다.
또 다른 논란은 '상탈족'입니다. 여름철 한강변에서 상의를 탈의하고 달리는 러너들이 늘면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이 많아졌습니다. 러너 입장에서는 더위를 견디기 위한 선택이지만, 공공장소에서의 적절한 복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저 역시 더운 날씨에 민소매를 입고 뛰지만, 상의 탈의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정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라톤 대회 참가 열기도 뜨겁습니다. 전국에서 연간 400개가 넘는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데, 2022년 346개에서 급증한 수치입니다. 2025년 서울국제마라톤에는 역대 최대인 4만 명이 몰렸고, 11월 예정된 여러 대회는 접수 개시 10분 만에 조기 마감됐습니다. 저도 올해 봄에 춘천마라톤 하프코스에 도전했는데, 접수 경쟁이 인기 콘서트 티켓팅 수준이었습니다. 새벽부터 대기하고 있다가 정시에 클릭했지만, 서버가 마비되어 10분 넘게 접속을 시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라톤 대회는 단순한 운동 이벤트를 넘어 지역 축제이자 관광 상품으로 진화했습니다. 롯데웰푸드는 자사 아이스크림 '설레임 쿨리쉬' 출시 기념으로 2025년 8월 서울 마포구에서 '설레임런'을 개최해 3000명이 참여했고, 올리브영은 9월 여의도에서 '산리오×올리브영 큐티 런' 마라톤을 열었는데 티켓이 20분 만에 매진됐습니다. 기업들은 러닝을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러닝 인구의 구매력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러닝 앱 시장도 급성장했습니다. 나이키런클럽은 2025년 7월 기준 월 이용자 수 33만 명을 기록했고, 보이스 코칭 기반 앱 '런데이'는 34만 명으로 나이키를 추월했습니다. 런데이는 실시간 호흡과 페이스 조절 피드백을 제공하고, 초보자를 위한 '30분 달리기 도전' 같은 8주 루틴 콘텐츠가 인기입니다. 소셜 러닝 플랫폼 '러너블'은 마라톤 대회 신청, 러닝 제품 구매, 커뮤니티 기능을 통합 제공하며, 최근에는 러닝과 여행을 결합한 '런트립' 콘텐츠를 개발했습니다. 스카이스캐너 조사에 따르면 한국 러너의 55%가 러닝을 목적으로 국내외 여행을 떠날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러닝이 제 삶에 가져온 변화에 만족합니다. 주 6일 음주하던 습관이 한 달에 몇 번 정도로 줄었고, 체력과 정신 건강 모두 개선됐습니다. 한강을 달리며 맞는 시원한 바람, 달리면서 떠오르는 여러 생각들, 완주 후 느끼는 성취감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다만 러닝 문화가 지속 가능하려면 러너 스스로의 성찰이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은 러닝 전용 트랙 확충과 러닝 이벤트 가이드라인 마련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서울시립대 신인철 교수는 "러닝도 예절 캠페인과 전용 공간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러닝은 코로나 시대에 급부상한 '방역 친화적 운동'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패션, 커뮤니티, 여행과 결합하며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습니다. 천만 러닝 인구 시대, 이 열풍이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개인의 즐거움과 공공의 조화라는 두 가치를 모두 지켜야 할 것입니다. 아직 러닝을 시작하지 않은 분들께는 가볍게 시작해보길 권합니다. 날 좋은 날 한강에 나가 천천히 걸어보고, 여유가 되면 짧게라도 달려보세요. 그 순간 느끼는 해방감과 성취감이 여러분의 일상에도 새로운 활력을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