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하고 한참 동안 신발과 시계에만 돈을 쏟았습니다. 바지는 집에 있던 걸 그냥 입고 뛰었는데, 처음으로 10km를 달리던 날 그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몸으로 배웠습니다. 핸드폰이 주머니 안에서 허벅지를 때리고, 에너지젤은 중간에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러닝 쇼츠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포켓 구성은 개수가 아니라 위치와 잠금 방식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포켓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열린 포켓이 다섯 개 달린 쇼츠보다, 지퍼 잠금이 되는 포켓 하나가 달린 쇼츠가 실제 레이스에서 훨씬 유용했습니다. 달리는 동안 내용물이 흔들리거나 빠지면 페이스 집중이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허리 밴드 일체형 포켓입니다. 쉽게 말해, 포켓이 허리 밴드 안쪽에 봉제된 구조로, 무게 중심이 허리 위에 고르게 분산되어 달릴 때 흔들림이 최소화되는 방식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옆 포켓이 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비교해보니 허리 밴드 일체형 포켓 쇼츠는 핸드폰을 넣어도 다리에 아무 느낌이 없었습니다.
포켓을 고를 때 제가 기준으로 삼은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귀중품은 지퍼 잠금이 되는 포켓에 넣어야 분실을 막을 수 있습니다. 포켓 위치는 허벅지 옆보다 허리 뒤쪽이나 허리 밴드 내장형이 달릴 때 안정감이 훨씬 크고요. 포켓 입구 소재가 신축성 있으면 폰이 생각보다 잘 들어가서, 카페인 젤과 일반 젤을 따로 꽂을 수 있는 개별 포켓이 있는 쇼츠는 레이스 중에 특히 편했습니다.
러닝 중 포켓 위치에 대한 의견은 러너들 사이에서도 갈립니다. 허벅지 포켓을 선호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단거리라면 모를까 10km 이상 장거리에서는 허리 쪽 포켓이 훨씬 낫다고 봅니다. 달리는 동안 허벅지에 무게감이 없어야 케이던스(cadence), 즉 1분당 발걸음 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쉽습니다. 케이던스가 흔들리면 후반 페이스 유지가 어려워집니다.
러너스 월드가 3주에 걸쳐 직접 착용 테스트한 결과에서도, 뒷면 지퍼 포켓과 허리 밴드 내장 포켓 조합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출처: Runner's World).
이너 라이너와 안쪽솔기 길이, 내 몸에 맞는 기준이 따로 있습니다
이너 라이너가 있으면 무조건 낫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이너 라이너(inner liner)란 쇼츠 안쪽에 일체형으로 봉제된 속팬츠로, 허벅지 내측 마찰을 줄이고 속옷 없이도 착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구조입니다. 여름 장거리에서 허벅지 안쪽이 쓸려본 경험이 있다면, 이 라이너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압니다. 저는 이너 라이너 없는 쇼츠로 20km를 뛰고 나서 허벅지 안쪽이 빨개진 이후로 라이너 유무를 무조건 확인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너 라이너가 압박이 불편하거나 여름에 더 덥다고 느끼는 분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라이너 없는 쇼츠에 기능성 러닝 속옷을 따로 입는 방식이 더 맞을 수 있습니다. 직접 입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부분이라 가능하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먼저 착용해보는 걸 권합니다.
안쪽솔기 길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쪽솔기 길이(inseam length)란 가랑이 봉제선에서 밑단까지의 길이로, 허벅지가 얼마나 덮이는지를 결정하는 수치입니다. 보통 3인치에서 10인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 7인치를 샀는데 피치를 올릴 때 원단이 무릎에 걸리는 느낌이 왔습니다. 5인치로 바꾸고 나서 다리 가동 범위가 확실히 달라졌고, 기록이 단축된 시기와 겹쳤습니다.
피치(pitch)란 달리기에서 1분당 발이 지면에 닿는 횟수로, 피치가 높을수록 빠른 보폭 회전이 필요합니다. 피치를 높이는 훈련을 자주 한다면 안쪽솔기 길이가 짧은 3인치나 5인치 쇼츠가 유리하고, 일상 조깅이 주라면 7인치 이상도 충분합니다. 달리는 방식에 따라 최적의 길이가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러닝을 주로 하는지를 기준으로 고르는 게 맞습니다.
소재도 간과하기 쉬운 부분입니다. 모이스처 위킹(moisture wicking) 소재란 땀을 피부에서 원단 바깥쪽으로 빠르게 이동시켜 체온을 낮추는 기능성 섬유를 말합니다. 면 소재는 땀을 머금어 무거워지지만, 모이스처 위킹 소재는 바람만 살짝 불어도 빠르게 건조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후반부 30분에서 차이가 납니다. 지친 다리를 한 번 더 들어 올리게 만드는 게 소재 하나의 차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의류 소재의 기능성과 체온 조절 효과에 대해서는 미국스포츠의학회(ACSM)에서도 기능성 섬유가 운동 중 열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효과적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출처: American College of Sports Medicine).
러닝 쇼츠를 고를 때 결국 정답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포켓 구성, 이너 라이너 유무, 안쪽솔기 길이, 소재 모두 달리는 방식과 몸 상태에 따라 최적해가 다릅니다. 저는 여러 쇼츠를 직접 입어보고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지금 입는 조합에 정착했습니다. 지금 입는 쇼츠로 정착하기까지 세 종류를 거쳤습니다. 그 과정이 번거롭긴 했는데, 지금은 달리면서 바지 걱정을 안 한다는 게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더라고요.
참고: https://www.runnersworld.com/gear/a22749888/running-sho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