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크루 활동하면 민폐집단 아니냐"는 말,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저도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10년 넘게 자전거 크루 활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소리 들어본 적 없었거든요. 그런데 러닝크루에 가입하고 보니,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더군요. 광화문이나 한강처럼 사람 많은 곳에서 대규모로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민들 눈에 띄는 겁니다. 문제는 일부 크루의 무신경한 행동이 전체 러닝 문화를 망친다는 점입니다.
러닝크루가 늘어난 진짜 이유
최근 몇 년 사이 러닝크루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미국 러닝 전문 매체에 따르면 2024년 신규 러닝 클럽 수가 전년 대비 59% 급증했고, 특히 Z세대가 이 성장을 주도했다고 합니다(출처: Strava 연례 스포츠 보고서). 국내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이런 그룹들에게 정체성을 확립하고 홍보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란 단순히 사진 올리는 공간이 아니라, 크루의 활동 기록과 분위기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새로운 멤버를 끌어들이는 마케팅 채널을 의미합니다. 제가 속한 크루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매주 러닝 일정을 공지하고, 참여 인증샷을 올리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덕분에 낯선 사람들이 쉽게 크루 문화를 접하고 참여할 수 있게 된 거죠.
실제로 저도 SNS를 통해 러닝크루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자전거 크루에서 10년 활동하며 익힌 그룹 운동 문화가 있었기에, 러닝크루 적응은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첫 모임 때부터 느낀 건 "시간 엄수"와 "그룹 페이스 맞추기"가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룹 페이스란 개인 능력과 관계없이 전체 구성원이 함께 달릴 수 있는 속도를 의미합니다. 잘 달린다고 혼자 치고 나가는 건 크루 문화에서 금기입니다.
러닝크루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첫째, 마라톤 완주나 기록 단축 같은 목표를 위해 함께 훈련하는 성과 중심 클럽입니다. 둘째, 러닝 후 커피나 맥주를 즐기며 친목을 도모하는 소셜 중심 클럽이고요. 셋째, 브랜드 구축이나 인플루언서 활동을 겸하는 콘텐츠 중심 클럽입니다. 솔직히 대부분 크루는 이 세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제가 속한 크루도 평일엔 페이스 러닝을, 주말엔 느긋한 런앤브런치를 즐기는 혼합형입니다.
민폐 크루 안 되려면 이것만은 지켜라
러닝크루가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는 공공장소 예절 부재입니다. 광화문 광장이나 한강공원은 우리만 쓰는 공간이 아닙니다. 러너, 보행자, 자전거 이용자가 공존하는 곳이죠. 그런데 일부 크루는 20~30명씩 무리 지어 인도를 점령하고, 추월할 때 신호도 주지 않으며, 심지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기까지 합니다. 이런 행동은 명백한 공공장소 에티켓 위반입니다.
여기서 공공장소 에티켓이란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 규칙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불편하면 남도 불편하다"는 원칙입니다. 저는 자전거 크루 활동 때부터 이 원칙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보행자 보이면 속도 줄이고, 추월할 땐 "왼쪽으로 지나갑니다" 신호 보내고, 좁은 길에선 1열 종대로 달렸습니다.
제가 속한 러닝크루의 핵심 규칙 네 가지를 공유하겠습니다.
- 시간 엄수: 약속 시간 최소 10분 전 도착해 스트레칭 준비. 바쁜 사람들이 시간 내서 모이는 거니까 당연한 예의입니다.
- 그룹 페이스 준수: 내가 빨라도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 혼자 치고 나가면 그룹 러닝 의미가 없습니다.
- 공공장소 배려: 큰 소리 금지, 쓰레기 버리기 금지, 흡연 금지. 특히 여름철 상의 탈의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어 절대 금지입니다(출처: 경범죄처벌법).
- 도로 신호 필수: 방향 전환이나 추월 시 손 신호, 급정거 금지, 보행자 우선 양보.
실제로 저희 크루는 주말 러닝 때 인원이 30명 넘어가면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한 번에 많은 인원이 인도를 점령하면 시민들에게 민폐니까요. 이런 작은 배려가 쌓여야 "러닝크루=민폐집단"이라는 편견을 깰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조심해야 할 건 장비 강요입니다. 일부 크루는 신입에게 특정 브랜드 러닝화나 고가 웨어를 암묵적으로 강요하기도 합니다. 러닝은 신발 하나면 시작할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비싼 장비가 실력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죠. 입문자를 무시하거나 느린 러너를 배제하는 분위기의 크루라면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제 경험상 건강한 크루는 "모든 속도 환영(All Paces Welcome)"이라는 슬로건을 실제로 지킵니다. 말만 그럴싸하고 실제론 빠른 러너만 챙기는 곳은 오래 못 갑니다.
러닝크루의 진짜 가치는 기록 경쟁이 아니라 서로 격려하며 함께 성장하는 데 있습니다. 혼자 달릴 땐 5km도 버거웠는데, 크루 사람들과 함께 뛰니 10km가 금방 지나가더군요. 이게 바로 그룹 러닝의 힘입니다. 다만 이 힘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최소한의 예절과 배려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민폐 크루로 낙인찍히는 순간, 러닝 문화 전체가 흔들립니다. 제가 10년간 자전거 크루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공동체는 한 사람의 무신경함으로도 쉽게 망가진다"는 것입니다. 러닝크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킬 건 지키면서 건강하게 달립시다.

참고: https://www.runnersworld.com/runners-stories/a70144925/why-running-clubs-are-thriving-today/